우연히 손에 쥔 오래된 물건 하나. 버리려다 문득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물건이 지닌 기억, 질감, 색감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다시 쓰이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말이다. 이번엔 그런 ‘쓰레기통 직전의 물건’들을 다시 꺼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봤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오래된 찻잔, 캔들홀더로 다시 태어나다
몇 년 전 선물 받은 찻잔 세트 중 하나가 깨지면서 세트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한두 개는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쓸모없다며 버리려던 그 잔을 나는 촛농이 굳지 않은 촛농처럼 붙잡았다. 도자기의 두께, 둥근 곡선, 은은한 색감은 오히려 인테리어 소품으로 더 어울려 보였다.
우선 찻잔 안에 천연 밀랍을 녹여 넣고, 심지를 고정한 후 다시 굳혔다. 그 위에 드라이플라워 몇 송이, 계피 조각도 얹었다. 그렇게 하나의 캔들홀더 겸 미니 화병이 완성됐다. 창가에 놓으니 햇살과 어우러지며 잔잔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손님이 올 때마다 "이거 어디서 샀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찻잔은 이제 마시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물건이 됐다. 기능은 달라졌지만, 그 존재감은 더 커졌다. 버려질 뻔했던 물건이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갖게 될 줄은 몰랐다.
책상 서랍에 처박혔던 버튼들, 벽을 장식하다
버튼은 이상하게도 자주 모인다. 입지 않는 셔츠에서 떼어내거나, 옷을 사고 여분으로 받은 버튼들. 크기, 색, 모양이 제각각이라 어디에 쓸 곳도 없고, 버리자니 왠지 아까워 늘 한 켠에 모아두곤 했다.
이번에는 이 버튼들로 미니 벽장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작은 캔버스 판 위에 접착제를 바르고, 색상 톤에 따라 버튼을 나열하거나 무작위로 콜라주처럼 붙여보는 것. 일부는 금속 단추였고, 일부는 앤틱한 플라스틱. 예상을 뛰어넘는 조화가 생겼다.
이 버튼 액자는 침대 옆 벽에 걸렸다. 불을 끄고 누워 바라보면, 마치 작은 유물 컬렉션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버튼 하나하나가 세월의 결이 느껴져서일까. 더 이상 의미 없는 조각이 아니게 되었다. 작은 물건도 제대로 바라보면 ‘소품’이 된다. 그 관점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DIY였다.
버려진 나무 상자로 만든 미니 테이블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마트에서 상품 진열용으로 쓰이다가 버려진 작은 나무 상자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게도 있고 거칠고 낡았다고만 느껴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 결이 살아 있었고, 모서리는 깔끔했다. '이건 그냥 버릴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사포로 표면을 정리하고, 투명 바니시를 발라 자연스러운 광택을 살렸다. 그 위에 작은 유리판을 얹었더니 사이드 테이블이 됐다. 크기가 작아 침대 옆, 소파 옆 어디에도 두기 좋았고, 무엇보다 원목 느낌이 방 안 분위기를 확 바꿔줬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이거 어디서 샀어?"라고 묻는 순간이 짜릿했다. 마트 뒤편에 쌓여 있던 상자에서 시작된 이 소품이 지금은 공간의 중심 소품이 된 것이다. 버려질 운명이었던 재료에 시간을 들여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경험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었다. 공간이 더 이상 단순히 꾸며지는 것이 아닌, 의미와 과정이 함께하는 장으로 바뀌었다.
버릴 물건은 없었다. 단지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쓰레기통 직전의 물건들이 다시 삶의 일부가 되고, 공간을 채우고, 기억을 품은 오브제가 되었을 때, 나는 ‘살아있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느꼈다. 버려짐과 재발견의 그 사이, 거기엔 분명 이야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