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되는 옷장. 버리기엔 아깝고 입자니 애매한 헌 옷들이 늘어난다. 이번엔 그런 옷 3벌로 방 안을 꾸며보기로 했다. 새것을 사는 대신, 낡은 옷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실험이었다.
셔츠 한 벌로 만든 커튼 가리개
먼저 손에 든 건 오래된 하늘색 셔츠. 칼라는 바랬고 소매는 해졌지만, 몸판은 아직 멀쩡했다. 이 셔츠로 만든 건 창가의 반가리개 커튼이었다. 셔츠 단추 라인을 그대로 살려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삼고, 아래를 잘라 직사각형 형태를 만든 뒤 가장자리를 박음질했다.
두꺼운 커튼 아래 달린 이 얇은 셔츠천은 햇빛을 부드럽게 걸러주는 역할을 했다. 바람이 불면 가볍게 흔들리며 방 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손님이 왔을 때 “이거 셔츠로 만든 거야?”라며 놀라는 반응도 나름의 재미였다. 패브릭의 패턴과 질감이 커튼에 그대로 살아 있어 독특함이 배가되었다.
한 벌의 셔츠로는 큰 커튼을 만들 수 없지만, 좁은 창이나 책장 앞, 수납장 커버용 가리개로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원단을 새로 사지 않고도 멋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래 입었던 옷이 창가에서 다시 살아난 느낌은 꽤 근사했다.
티셔츠로 완성한 쿠션 커버
두 번째로 사용한 건 흰색 면 티셔츠. 약간의 오염이 있었고 늘어났지만, 촉감은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이 천으로 작은 쿠션 커버를 만들었다. 등받이나 허리 쿠션에 쓰기 좋은 사이즈로 재단한 후, 티셔츠 앞면의 프린트가 보이도록 앞면으로 사용했다.
재봉틀 없이도 가능하도록 바느질을 최소화했고, 안쪽에 벨크로를 달아 탈부착이 가능하게 했다. 다 만들고 나니, 오래된 티셔츠의 로고나 문구가 오히려 빈티지한 느낌을 주며 방 분위기를 더했다. 예전에는 잠옷처럼 입던 옷이 이젠 소파에 놓인 감성 쿠션으로 변신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업은 간단하고 재미있었다. 단 하나의 옷으로도 결과물이 금방 완성되고, 실내 분위기 전환 효과도 꽤 크다. 티셔츠 한 장이 방 안의 질감을 바꾼다니, 새삼 옷의 소재와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가장 부드러운 기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시 느낄 수 있게 됐다.
체크무늬 잠옷으로 만든 벽 패브릭 & 수납 정리함
마지막 헌 옷은 체크무늬 잠옷 바지였다. 면 재질이 부드럽고, 무엇보다 패턴이 규칙적이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원단은 벽에 거는 미니 패브릭 월데코와 수납함 겸용 주머니 정리판에 활용했다.
우선 바지를 재단해 원하는 크기의 천으로 만든 뒤, 판넬에 씌워 벽에 고정했다. 그 위에 작은 주머니를 덧붙이면, 열쇠나 리모컨, 메모지를 꽂아두는 간이 수납판이 되었다. 기능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 방을 아늑하게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이런 벽 패브릭은 인테리어 소품이 부족하거나 허전한 벽을 채우는 데 효과적이었다. 거창하지 않지만 공간에 섬세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정리함은 단순히 수납의 도구가 아니라, 기억이 깃든 천 조각이 또 다른 쓰임을 얻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버려질 뻔한 잠옷 바지가 실용성과 감성을 모두 갖춘 인테리어 요소로 바뀌는 과정은 신기하고 의미 깊었다. 방 안 곳곳에 나만의 이야기가 스며들며, 공간이 더 이상 소비의 결과물이 아닌 ‘재해석의 무대’로 바뀌었다.
헌 옷 3벌로 방을 꾸며본 이번 도전은 공간에 나만의 손길을 더하는 경험이었다. 오래된 옷은 쓰임을 잃은 게 아니라, 아직 쓰일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작은 재해석만으로도 우리는 더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