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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없었던 물건을 리폼해본 기록

by 알 소식 2025. 7. 9.

오래되어 낡고 쓸모는 없지만, 쉽게 버릴 수 없었던 물건. 나만의 추억이 담긴 그것들은 종종 애매한 형태로 남는다. 이번엔 그런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해 버리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게 해보는 실험을 해봤다. 손을 더하며, 기억도 천천히 정리해본 시간이었다.

버릴 수 없었던 물건을 리폼해본 기록
버릴 수 없었던 물건을 리폼해본 기록

언젠가의 셔츠, 이제는 책 커버로

낡은 셔츠 하나가 있었다. 단추는 헐렁하고 칼라는 닳아 있었지만, 이상하게 버리지 못했다. 이 셔츠는 몇 해 전, 내가 가장 자신감 있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던 날 입었던 옷이었다. 그날의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옷이었기에, 옷장 속 가장자리에서 수년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입지 않음은 분명했고, 보관만 하기엔 공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이 셔츠를 책 커버로 리폼하기로 결심했다. 얇고 부드러운 면 소재가 책을 감싸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셔츠 단추 라인을 그대로 살려 책의 여밈으로 활용했다. 재봉틀 없이 바느질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완성된 책 커버를 손에 쥐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평소 자주 읽던 에세이에 입혀놓으니, 그 책이 내게 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기억이 된 것이다. 단순히 낡은 셔츠가 아니라, 의미 있는 순간을 되살린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

 

아버지의 손목시계, 프레임 속의 오브제로

아버지가 사용하던 손목시계. 오래되어 멈춘 지 이미 십여 년은 지났지만, 버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이 시계는 정확히 1998년, 가족 여행에서 아버지가 그날의 기념으로 구입했던 것이었고, 내가 어릴 적 그의 손목에서 자주 봤던 유일한 액세서리였다.

시계는 시간이 멈췄지만, 그 안의 기억은 또렷했다. 나는 이 시계를 벽걸이 오브제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작고 깊이감 있는 액자 프레임을 구입해, 시계를 중앙에 고정하고 옆에는 짧은 글귀와 함께 날짜를 새겨 넣었다. 액자의 배경지는 아버지가 자주 입던 체크무늬 셔츠의 천 조각으로 채웠다.

이제 그것은 단순히 멈춘 시계가 아니라, 시간이 머물러 있는 기억의 상징이 되었다. 방 한 켠 벽에 걸어두니, 무심코 눈길이 닿을 때마다 따뜻한 마음이 일렁인다. 리폼이란 기술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감정과 기억을 새로 배치하는 일이기도 했다.

 

낡은 쿠션, 자투리 패브릭으로 다시 숨쉬다

거실 소파에 있던 쿠션 하나. 겉천은 바래고 찢어졌지만, 그 안의 솜은 아직 쓸 만했다. 이 쿠션은 내가 대학생 시절, 자취방에서 첫 월세를 내고 직접 산 첫 ‘집꾸미기’ 소품이었다. 값비싼 것도 아니었고, 촌스러운 색감이지만 이상하게 애착이 갔다. 많은 날의 기대와 피곤함을 안아주던 그 존재.

그래서 나는 겉천을 벗기고, 남은 자투리 천들을 조각조각 이어 새로운 커버를 만들었다. 여름 셔츠에서 잘라낸 리넨 천, 오래된 커튼 조각, 티셔츠 자락까지. 각기 다른 질감과 색을 가진 천들이 하나의 조각보처럼 이어졌다. 일부는 손바느질로, 일부는 접착 심지로 고정하며 퍼즐처럼 완성해갔다.

완성된 쿠션은 이전보다 훨씬 독특해졌고, 색도 생기를 가졌다. 쓰임이 바뀌었지만, 이 쿠션은 여전히 내 몸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버릴 수 없었던 건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꿰매고 덧대며, 그 시간을 더 오래 곁에 두게 된 것이다.


버리지 못한 물건을 리폼하면서, 나는 물건의 쓰임을 바꾸는 동시에 기억을 정리하고 다시 꺼내는 경험을 했다. 물건 하나에도 감정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이미 버릴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손으로 꿰매는 일은, 꽤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